문상훈 「내가 한 말을 내가 오해하지 않기로 함」 — 읽고 나서
빠더너스 문상훈의 에세이집을 읽고 OOFF TABLE 독서 소셜링에 갔다. 책 얘기로 시작해서 결국 각자 얘기로 끝났다.
오늘 밤 독서 소셜링이 있었다. 신논현 어딘가, 처음 가보는 자리.
책을 미리 읽고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읽었다. 문상훈, 「내가 한 말을 내가 오해하지 않기로 함」. 유튜브 채널 빠더너스를 운영하는 사람이 쓴 에세이집이다. 168쪽. 얇은 편인데 한 문장 끝날 때마다 멈추게 된다.
이슬아 작가가 추천사에서 “정교한 청승”이라고 썼다. 읽고 나니 그 말이 정확하다는 걸 알았다.
아무도 안 볼 거라 생각하니까
책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누가 보여주기 위해 쓰는 일기. 아무도 안 볼 거라 생각하니 안 쓰게 되고, 누군가에게 “이거 아무한테도 안 보여줬어” 하면서 쓰는 일기.
읽다가 피식했다.
나도 2월부터 혼자 블로그를 시작했다. 3월까지는 얼핏 썼는데, 어느 순간부터 2달을 안 쓰고 있었다. 딱히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다. 굳이 이유를 대자면 — 아무도 안 볼 것 같으니까.
책에 이런 문장이 있다.
“오늘을 마지막 날처럼 살라는 건 알겠는데, 한 번도 상처받지 않고 살라는 말도 알겠는데,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춤추라는 건 너무 어렵다.”
맞다. 아무도 안 본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더 못 하게 된다. 블로그도 그렇고, 일기도 그렇고. 이 글도 그렇고.
부끄럽고 싶다
이 챕터를 가장 오래 읽었다.
“난 나이 들수록 부끄럽고 싶다. 아무리 생각해도 행복이 뭔지 설명하기 어려우니 행복했던 순간을 그대로 재현해보는 것으로 그 기분을 더듬는다. 청춘도 어느 계절을 콕 집어 청춘이라 하기가 어려우니 대충 그즈음의 마음만 기억하려는 것이다. 내 하루는 대체로 울적하거나 아쉬운데 내가 소년이었을 때의 마음들은 지금보다 더 울적하고 아쉬웠어서 그 시절의 마음들이 더 귀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계속 아쉽고 싶은가 보다. 능숙하고 잘하면 왠지 청춘에서 멀어진 것 같아서. 더 정확히 말하자면 부끄러움을 모르는 능청스러운 모습이 아저씨 같아 나는 계속 부끄럽고 싶다. (…) 속상하면 속상하다고, 내가 질투가 났다고, 미안하고 내가 부족했다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은 언제나 소년이다.”
나이 들수록 부끄럽고 싶다는 말이 처음엔 이상하게 들렸다.
근데 읽다 보니 알 것 같다. 능청스럽게 다 아는 척, 다 괜찮은 척하는 게 더 나이 든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 미숙하고 아쉬운 게 — 그게 오히려 아직 살아있다는 증거 아닐까 싶었다.
나는 언제부터 부끄럽지 않아졌을까.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는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할 수 없게
이 구절에서 잠깐 멈췄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별점의 기준이 되니까 좋아하는 것을 좋아할 수 없게 됩니다.”
읽자마자 소개팅 자리가 떠올랐다. 게임을 좋아하는데,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선뜻 말하기가 망설여지는 것. 모태신앙인데 그것도 처음에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게 되는 것.
더 솔직하게 말하면 — 사실 집에서 밥을 거의 시켜먹는다. 헬스장이 재미없다. 근데 어느 순간부터 헬스장 주 3회 가고, 식단 챙기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걸 하다 보니 진짜로 좀 습관이 되기도 했다.
그럼 그건 좋아진 건가, 아니면 그렇게 보이고 싶어서 하는 건가. 그 경계가 흐릿해진 게 좀 무섭기도 하다.
그 외 기억에 남는 문장들.
“커가는 길은 힘들고 지루했고, 늙어가는 길은 우울해서 힘이 죽죽 빠진다. 나는 일생에 언제 기쁠 수 있나.”
“잘 나온 사진만 내 얼굴이 아니듯이 기대에 부응한 나만 내가 아니라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내가 다른 사람의 행복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타인의 행복에 왈가왈부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이걸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
자리에 앉으니 카드가 놓여 있었다
실제로 OOFF TABLE에 가봤더니, 자리마다 카드 두 장이 놓여 있었다.
첫 번째는 독서토크 질문지.
책 제목 / 어쩌다 이 책을 잡게 되셨나요 / 나를 멈추게 한 대목, 혹은 문장 / 왜 이 대목이 유독 걸렸나요? 그에 대한 나의 입장은? / 책을 통해 테이블 메이트들과 나눠보고 싶은 화두를 적어두세요.
마지막에 작은 글씨로 적혀 있었다. yes/no로 대답할 수 없는 질문, 정답이 없는 질문일수록 좋습니다. 이 책을 읽지 않은 사람도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질문으로 적어주세요.
두 번째는 자기소개 카드. 12가지 질문 중 하나를 골라 쓰는 방식이었다.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선택은? / 내가 자주 하는 후회는 어떤 패턴인가요? / 도망치고 싶은 순간, 이유 그리고 그 결과는? / 스스로 가장 대견하게 느꼈던 때는? / 사람을 돌아보게 만든, 기로에 있었던 때는?
이름이 뭐예요, 무슨 일 해요 대신 이걸로 시작하는 자리였다.
카드 두 장 받아들고 앉아서, 오늘 이 자리가 어떤 방식으로 흘러갈지 보이는 것 같았다. 생각보다 잘 설계된 자리였다.
오늘 밤 던져볼 화두
모르는 사람들이랑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책 얘기를 어떻게 꺼낼지 고민하다가, 세 가지를 준비했다.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는 게 가능한가요?”
오늘을 마지막 날처럼 살라는 말은 그나마 상상이 된다. 아무도 안 보는 것처럼 행동하라는 건 진짜 모르겠다. 처음 만나는 자리일수록 더. 자기검열 얘기로 이어지는 질문이라 첫 화두로 괜찮을 것 같았다.
“지금 자신이 부끄러워하는 사람인가요, 아니면 능청스러워진 것 같나요?”
각자 “어, 나 언제부터 이런 거에 부끄럽지 않아졌지?” 싶었던 순간을 꺼내기 좋은 질문이다.
“남한테 말 못하고 있는 ‘좋아하는 것’이 있나요?”
처음 만나는 자리라서 오히려 꺼내기 좋을 수도 있다. 어차피 다시 안 볼 수도 있으니까.
다녀오고 나서
2차까지 갔다. 술 없는 술속의 밤, 신논현점.
다들 가져온 책들이 다양했다. 퓨처셀프, 달과 6펜스, 애인의 애인에게. 제목만 들어도 각자 어떤 시기에 있는지 살짝 보이는 것 같은 책들이었다. 그중 『애인의 애인에게』는 솔직히 읽어보고 싶어졌다.
다양한 연애썰을 들었다. 모르는 사람들이라 오히려 말이 됐던 것 같다. 느슨한 연대의 장점이 이런 거다. 내일 다시 볼 사람이 아니니까 좀 더 편하게 꺼낼 수 있는 것들이 있다.
7명이서 롤링페이퍼도 썼다. 처음 보는 사람한테 뭔가를 적어줘야 한다는 게 처음엔 어색했는데, 막상 받아보니 재밌었다. 한 시간 남짓 같이 있었을 뿐인데 뭔가를 적어줄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다.
책 읽는 사람들이 모여서인지 대화가 풍성했다. 직업이나 나이 얘기가 생각보다 늦게 나왔다. 그게 좋았다.
힘들 때 어떻게 하냐는 말에 다들 일기 쓴다고 했다. 나는 거기에 더해서 —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페르소나로 타자화해서, 고민이나 문제가 생기는 걸 오히려 콘텐츠라고 생각하고 즐기게 되더라고 했다. 말하면서 나도 처음 정리가 된 것 같았다.
집 가는 길, 약간 허했다. 그러면서 재밌었다. 소셜링이라는 게 뭔가를 얻으러 가는 자리는 아닌 것 같다. 오늘 이 시간에 이런 사람들이랑 이런 얘기를 했다는 것 자체가 남는 것 같다.
문상훈 책 얘기로 시작해서 결국 각자 얘기로 끝났다. 책이 그렇게 써먹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