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상형은 미래에서 온 사람이다
강남 영어 스터디에서 던져진 질문, 이상형이 뭐에요? 안광, 하이데거, 그리고 미래에서 온 사람들에 대한 단상.
월요일 저녁, 강남.
영어 스터디 모임에 갔다. 오늘의 주제는 두 개였다. “What’s your ideal type?” 그리고 “What inspires you?” 흔한 질문이다. 소개팅에서 열일곱 번쯤 들었고, 매번 다른 답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 질문은 대답할 때마다 내가 조금씩 달라져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오늘도 그랬다.
안광이라는 주파수
“이상형이 뭐에요?”
보통 남자들은 ‘하얗고 착한 사람’이라고 한다. 여자들은 ‘다정하면서 자기계발 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그건 이상형이 아니라 스펙시트다.
나는 요즘 이렇게 답한다.
“안광이 좋은 사람.”
너무 추상적이라는 걸 안다. 그래서 덧붙인다. 겉은 에겐 같고 속은 테토 같은 사람. 같이 있으면 재밌는 사람. 베프 같은 연애가 가능한 사람.
안광이 뭘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눈이 빛나는 건 단순히 외모의 문제가 아니다. 자기 상태를 알고, 컨트롤할 줄 아는 사람의 눈에는 특유의 파동이 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긍정적인 사람은 눈에 스파클이 있다. 시선의 진폭이 크다고 해야 할까. 주파수가 높다고 해야 할까.
결국 안광이 좋으려면 자기 자신을 잘 알아야 한다. 스트레스를 어떻게 관리하는지. 지금 내가 어떤 상태인지. 그걸 모르는 사람의 눈은 흐리다. 아무리 얼굴이 예뻐도.
자기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의 눈은 다르다.
콩깍지가 벗겨지는 순간
스터디 멤버 하나가 점심시간 번개 소개팅을 다녀왔다고 했다. 첫인상 소감을 물었다.
“얼굴이 fun해서 좋았어.”
다들 웃었다. fun한 얼굴이라니. 존잘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나는 다른 게 떠올랐다. 낯선 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주는 사람. 엘리베이터에서 ‘열림’ 버튼을 꾹 누르고 있는 사람. 그런 사소한 행동에서 나는 오히려 설렌다. 맑은 인성의 Green Flag.
영어로 이런 표현이 있다.
“The rose-colored glasses wear off.”
콩깍지가 벗겨진다는 뜻이다. 외모의 유효기간은 짧다. 얼굴이 아무리 fun해도, 결국 남는 건 그 사람이 문을 잡아줬느냐 아니냐의 문제다.
죽음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 사람
대화가 깊어지면 나는 이런 말을 꺼낸다.
“죽음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 좋다.”
분위기가 갑자기 철학 세미나가 된다. 하지만 진심이다.
하이데거는 인간을 ‘죽음을 향한 존재(Sein zum Tode)’라고 했다. 삶의 유한함을 아는 사람은 오늘을 다르게 산다. 내일이 없을 수도 있다는 감각이 있으면, 사소한 것에 감사하게 되고, 중요한 것에 집중하게 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건다.
죽음을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사람은 눈빛이 다르다.
거기에 안광이 있다.
미래에서 온 사람
“Who inspires you?”
이 질문에 나는 젠슨 황과 일론 머스크를 꼽았다. 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건 그들의 성공이 아니라, 그들의 시선이다.
보통 사람들은 오늘에서 미래를 계산한다. 지금 월급이 이러니까 5년 후에는 저 정도 모을 수 있겠지. 그런데 비저너리들은 반대다. 이미 이룬 미래의 시점에서 ‘과거로서의 오늘’을 산다. 시간의 방향이 다르다.
행동 전의 상상은 ‘계획’이다. 행동 없는 상상은 ‘몽상’이다. 그 차이는 결국 오늘 뭘 하느냐에 달려 있다.
나는 그런 감각을 가진 사람을 ‘미래에서 온 사람’이라고 부른다. 이미 도착한 미래에서 역산해서 오늘을 사는 사람. 그 바이브가 좋다.
이상형도 결국 그런 사람이다. 안광이 좋고, 죽음을 알고, 미래에서 온 사람.
오늘의 인풋
스터디 리더가 책 하나를 추천해줬다. 매기 넬슨의 ‘Bluets’. 파란색에 대한 240개의 산문시 같은 글이라고 했다. 주문해야겠다.
오늘도 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질문을 받고, 새로운 답을 만들었다. 인풋이 있어야 아웃풋이 있다. 그리고 아웃풋이 있어야 미래가 있다.
나는 아직 미래에서 온 사람을 찾지 못했다. 어쩌면 내가 먼저 미래에서 와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