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 소셜링 파티 후기 — 그레이스클럽 와인파티, ENFP도 떨었다

신촌 그레이스클럽 소셜링 와인파티 솔직 후기. 입장료 10만원, 혼자 참석. 첫인상 15초의 법칙은 맞았다. 근데 심장이 안 뛰더라.

신촌 소셜링 파티 후기 — 그레이스클럽 와인파티, ENFP도 떨었다

토요일의 온도

오후 4시 반. 강남역 오픽 시험장에서 나왔다. 머릿속은 아직 영어 문장들로 어수선했다.

시험이 끝나면 보통 집에 가고 싶어진다. 그런데 나는 신촌으로 향했다. 6시에 그레이스 클럽 소셜링 파티가 있어서. 입장료 10만 원. 장소는 노고산 스튜디오.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길은, 시험을 보러 가는 길보다 더 긴장됐다.

신촌 노고산 스튜디오 입구

창천 공영주차장

신촌에 차를 세워야 했다. 예전에 LST 영어스터디 모임 갈 때 한 번 와본 적 있는 창천 공영주차장을 찾았다.

두 번째 오는 곳인데도 익숙하지 않았다. 주차하고 나서 화장실 거울 앞에 섰다. 양치를 하고,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핫팩을 주머니에 넣었다.

밖으로 나오니 바람이 뺨을 때렸다. 5분 정도 걸어야 하는 거리. 2월의 신촌은 체감 온도가 숫자보다 낮았다.

도착했을 때는 5시 55분.

혼자 오다 보니 파티 들어가기 전 심장박동수를 나눌 사람이 없었다. 추워서 그런가. 긴장이 오히려 온기처럼 느껴졌다.

장소 — 개조 주택

장소를 찾는 게 쉽지 않았다. 네이버 지도에도 잘 안 보였다.

알고 보니 일반 주택을 개조한 스튜디오였다. 작은 2층 주택에 앤티크한 인테리어를 입혀놓은 곳. 30~40명은 들어갈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20명 정도 왔다.

특이했던 건 신발을 벗어야 한다는 것. 일반 주택이니까 당연한 건데, 정장 차림의 사람들이 코트랑 구두를 한쪽 구석에 쌓아두는 광경이 좀 웃겼다.

드레스코드는 정장, 비즈니스. 다들 코트에, 치마에, 단정하게 차려입고 왔다. 그런데 신발을 벗은 발로 서 있으니까, 우아함과 친밀함이 묘하게 공존했다.

스텐딩 테이블에 둘러서 서 있거나, 앤티크 의자 여러 개를 모아다가 앉아 있거나.

파티 장소 내부 — 앤티크 샹들리에와 스텐딩 테이블

먼저 와 있던 사람들

들어갔을 때는 남성 6명, 여성 2명 정도 있었다.

역시 파티는 늦게 오는 게 정석이다. 일찍 온 사람은 뻘쭘함을 견뎌야 한다. 나는 그 뻘쭘한 쪽이었다.

옆에 키 큰 남성분이 있었다. 이야기를 나눠보니 제조업 쪽에서 일하는 분이었다. 전공도 전기전자라 나와 비슷했다. 말 없이 “둘이 좀 의지하자”는 합의가 이루어졌고, 우리는 메인 테이블에서 한 발짝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사람이 하나둘 늘어나면서 점점 귀가 멍해졌다. 그때까지 자기소개를 6번 이상 했으니까. 같은 말을 반복할수록 내 소개가 점점 짧아졌다.

“같이 올라갈래요?” 누군가 2층을 가리켰다. 올라가려는 순간, 다른 누군가가 이상형 질문을 던졌다.

나는 “안광이 좋은 사람이 좋다”고 대답했다. 그 말을 하면서 내가 정말 그런지 잘 모르겠었다.

귓속말 게임

2층에 올라가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난간 너머로 아래층이 보였다. 커플처럼 보이는 선남선녀가 깊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파티장 2층에서 본 1층 전경

“같이 이야기 나눠도 될까요?” 괜찮다고 해서 합류했다.

그룹이 8명 이상으로 불어났다. 자연스럽게 귓속말 게임이 시작됐다. 누군가 나를 골라서 한 잔 건네며 귓속말을 했다. “이 중에 그래도 인상이 좋은 사람이 누구예요?”

파티에서 게임을 할 줄은 몰랐다. 그런데 타인의 귓속말은 생각보다 심장을 두드린다.

눈에 띈 사람

그러다 한 명이 새로 들어왔다.

솔직히 말하면, 첫눈에 호감이 안 갔다. 외모는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자기소개를 들어보니 달랐다. 많이 어리고, 공부를 열심히 한 친구였다. 말 하나하나에 단단함이 묻어 있었다.

“한번 이야기는 나눠볼까.”

귓속말 게임에서 나를 골라줬기에 용기가 났다. 어디 사는지 물어봤다.

같은 송파.

“지금 이차 갈 때가 아니라 그냥 둘이서 좀 얘기하지 않겠냐” 해서, 우리는 파티장을 빠져나왔다.

이차 — 송리단길 라운지의 디저트

이차 — 송리단길

이차는 송리단길에 있는 카페 겸 라운지였다. 조명이 낮고 음악이 작았다. 편했다.

메뉴에 두쫀쿠가 있길래 “어, 이거 나중에 먹어야지” 했다. 그런 쓸데없는 다짐이 편안함의 증거였다.

주문은:

  • 버터 알 감자
  • 치킨 & 감자튀김
  • 논알콜 샹글리아 (상대방)
  • 제로콜라 (나)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자꾸 옆길로 빠졌다. 영어 과외 이야기, 대학생 시절 이야기, 토익시험 이야기. 주제가 계속 가지를 쳤다.

그러다가 실행력 이야기가 나왔다.

“실행력이 있다”는 말

상대방이 과외 관련 이야기를 풀어주길래, 나도 꺼냈다.

20살 때 토익시험장에서 시험을 보고 나가면서, 책상 위에 “00대생 왔다감. 010-0000-0000” 이렇게 적어뒀다. 그랬더니 진짜 연락이 왔다. 그렇게 2살 어린 학생들에게 영어 과외를 했다.

뭔가 떠오르면 실행해야 직성이 풀린다. 오픽 시험도 토요일 이틀 전에 “할 게 없는데 뭐하지?” 하다가 신청한 거였다.

그 이야기를 듣고 상대방이 말했다. “실행력이 있다.”

그 한마디가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인정받은 느낌이 기분 좋았다.

Better done than perfect

영어로 비슷한 문장이 있다.

“Better done than perfect.”

완벽하게 준비하느라 시간 쓰지 말고, 일단 하는 게 낫다.

내가 팀원들한테도 자주 하는 말이다. 이 자리에서 또 확인했다. 완벽을 기다리는 사이에 기회는 지나간다.

새벽 1시의 귀갓길

새벽 1시에 끝났다.

차 안에 앉아서 잠깐 생각했다. 오늘 하루, 시험 하나 보고, 파티 하나 가고, 사람 하나 만났다. 바쁜 토요일이었다.

근데 역시 15초가 맞았다

“사람은 첫 15초에 판단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나는 그게 틀렸다고 생각했었다. 사람을 더 알아봐야 한다고, 첫인상에 속지 말라고.

근데 이번에 확인했다. 맞더라.

내가 좋아하는 외모로 1차 예선이 통과되고, 그다음에 성격, 배경, 직업 같은 게 눈에 들어온다.

그날 대화는 편했다. 뭔가 통하는 줄 알았다. 웃음도 자연스러웠고, 침묵도 불편하지 않았다.

근데 심장이 안 뛰더라.

편안함과 설렘은 다른 문이었다.

한 번 더 만났다

그날 이후 한 번 더 봤다. 혹시나 싶어서. 시간이 지나면 달라질 수도 있으니까.

억지로 한 번 더 도전해봤다.

근데 여전히 심장은 조용했다.

역시 15초가 맞았다.

차량 인테리어 디테일 — 네잎클로버 키링과 춘식이 거치대

사소한 것들

대화를 나누면서 그 사람은 내 차량 거치대의 네잎클로버 키링, 다니엘 트루스 밤쉘 향, 디퓨저 고리 같은 걸 관심 있게 봐줬다.

사소한 것을 알아채 주는 사람은 좋다. 그건 분명하다.

근데 그 사람이 없는 시간에, 나는 그 사람을 떠올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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