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연애와 성장 사이 — 목요일 저녁 강남 카페에서

LST 커뮤니티에서 만난 사람들과 나눈 연애 이야기. 성장을 추구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만났을 때, 그 틈을 메우는 것은 사랑일까 착각일까.

30대, 연애와 성장 사이 — 목요일 저녁 강남 카페에서

목요일 오후 7시, 강남의 한 카페.

초록초록한 식물들이 창가를 따라 늘어져 있고, 옆 테이블에는 갈색 푸들과 흰 비숑이 서로를 향해 꼬리를 흔들고 있다. 우리는 그 강아지들을 힐끗거리며 웃다가, 이내 다시 대화에 빠져든다.

오늘의 주제는 연애.

이 모임의 시작은 LST 페어 세션이었다. 대화가 잘 통해서, 커뮤니티 오너스라는 그룹 챗까지 이어진 인연. 다들 사람 간의 커뮤니케이션, 심리에 관심이 많고,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걸 좋아한다. 목요일 저녁마다, 우리는 이렇게 모여 서로의 삶을 해부한다.

오늘은 한 친구가 최근 헤어진 이야기를 꺼냈다.

“11월에 소개팅으로 만났는데, 처음엔 진짜 잘 맞았어. 같이 게임도 하고, 롤토체스 같은 거. 근데 3주쯤 지나니까 뭔가… 미래가 안 그려지더라고.”

롤토체스. 여자들이 잘 안 할 법한 게임을 같이 한다는 건, 취향이 잘 맞는다는 신호였을 거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점점 다른 걸 보게 됐다.

“그 사람이 계속 물어봐. ‘나 짐 될 거 같은데 괜찮아?’, ‘날 얼마나 사랑해?’ 이런 거. 나는 좀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포텐셜을 봐줬으면 좋겠는데…”

성장을 추구하는 사람, 그렇지 않은 사람

그의 말을 듣고 있자니, 나도 비슷한 경험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성장을 추구하는 사람. 그렇지 않은 사람.

이 두 부류가 만났을 때, 느낄 수 있는 그 벽. 처음엔 보이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 점점 선명해지는 온도 차이.

다른 친구가 말했다.

“나도 비슷해. 나는 막 배우고 자기 개발하고, ‘이거 해야 되는 거 아니야?’ 이런 사람인데, 만난 애들은 다들 욕심이 없었어. 일 끝나면 공부도 안 하고, 여유롭고. 근데 나는 그걸 못 견디는 거야.”

그는 세 번을 반복했다고 했다.

세 번 모두, 비슷한 패턴이었다. 연애 초반엔 좋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대의 무기력함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상대를 바꾸려 했다.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주고, 면접 준비를 도와주고, 돈 200만 원밖에 없던 사람을 2억으로 만들어줬다.

“근데 얘는 나한테 고마워하지 않았어.”

그의 목소리에 약간의 허탈함이 섞여 있었다.

“그래서 깨달았어. 내가 문제가 있는 거야. 내가 그런 사람한테 끌리는 거니까. 무의식 중에 여유로운 사람한테 끌리는데, 결국 못 견디는 거지.”

왜 그런 사람한테 끌릴까?

우리는 한참을 그 질문 위에 머물렀다.

왜 우리는 자꾸, 바꿀 수 없는 사람에게 끌리는 걸까?

한 친구가 조심스럽게 가설을 꺼냈다.

“나는 도전적인 사람을 좋아하거든. 근데 여자들은 상대적으로 안정을 추구할 수밖에 없잖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위험해 보일 수 있는 요소를 줄이지 않아. 오히려 키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 선택하나 보고 싶은 거야.”

그는 자신이 일부러 리스크를 보여준다고 했다.

“나는 꿈이 요번 클럽이야, 내고 싶어. 경험 없는 사람 싫어, 재미없어. 이런 식으로 막 던지는 거지. 그럼 어떤 남자들은 ‘아, 이 여자 위험하다’ 싶어서 떠나가. 근데 그런 사람들은 어차피 나랑 안 맞아. 나는 이 문턱을 넘는 사람한테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해.”

그래서 착각을 했던 거다.

문턱을 넘었다는 사실만으로, 상대를 과대평가했던 거.

“근데 나중에 보니까, 그 사람들은 좀… 부주의했어. 세 명 연속, 연애하는 도중에 어딘가에 화상 입었던 사람들이었어. 나는 살면서 한 번도 그런 적 없는데.”

충동과 용기 사이

부주의함. 충동성. 용기.

이 세 가지는 어디서부터 구분되는 걸까?

우리는 한참을 그 질경에 대해 이야기했다. 충동적이고 무모해 보이는 사람이, 때로는 용기 있고 도전적으로 보이기도 한다는 것. 그리고 그 경계는 사실 매우 모호하다는 것.

“그래서 나는 이제 알 것 같아. 내가 좋아하는 건 ‘재미’와 ‘용기’인데, 그게 사실 ‘충동’ 때문일 수도 있다는 거. 근데 그걸 처음에는 구분할 수가 없잖아.”

그래서 세 번을 반복했고, 이제는 조금 더 신중해졌다고 했다.

성장을 추구하는 사람을 만나라

주변 어른들은 항상 말한다.

“성장하려는 사람을 만나.”

처음엔 그 말이 조금 고리타분하게 들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그 말의 무게가 느껴진다.

“나는 항상 말했어. 세상을 같이 나아갈 때, 서로 편이 돼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사람이 좋다고. 근데 내가 만난 사람들은 항상 내가 엄청 챙겨줘야 하는 사람들이었어.”

그는 지쳤다고 했다.

상대의 감정을 읽어주고, 알려주고, 발전시켜주는 일. 그걸 충분히 발전시킨 다음, 같이 나누고 싶었는데, 그 전 단계에서 멈춰버렸다.

“근데 어른들이 말하더라고. 나랑 같은 마음을 가진 애들은 나랑 파워 커플 하고 싶어 하지, 나랑 연애하고 싶어 하진 않을 거라고.”

그 말이 씁쓸하게 느껴졌다.

나같은 사람이 이상형이라면

우리는 대화를 이어갔다.

사람은 결국 자기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게 되어 있다는 것. 주변 열 명의 평균이 나라는 것.

그렇다면, 나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면, 내가 먼저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

“나는 평생 철들기 싫어. 늘 궁금해하고, 세상을 재밌게 살고 싶어. 그래서 철없는 여자가 좋은데…”

그가 웃으며 말했다.

“근데 철없으려면, 인생에 풍파가 없어야 하고, 사랑도 많이 받아서 이게 사랑인 줄 모를 만큼 자라야 하잖아. 그런 사람… 정말 어렵더라.”

30대, 여자와 남자의 다른 타임라인

한 친구가 조용히 말했다.

“여자는 30대가 되면서 유전자가 아이를 낳고 싶게 해. 남자도 알게 모르게 본능적으로 아이를 갖고 싶어 하고. 그러다 보니 현명한 여자는 ‘나와 함께 유전자를 이 세상에 남기고 싶은 사람’을 찾게 돼.”

결혼은 생각 없다가, 아이는 셋을 갖고 싶어 생각이 변하는 사람도 있다. 아이를 갖고 싶다 보니,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고, 그러다 보니 나와 비슨한 사람을 만날 텐데, 그 사람이 멋진 사람이 되기 위해 나를 멋지게 만들려고 노력하게 된다.

“좋은 사람을 만나기 위함이 삶의 원동력이 아닐까. 열심히 사는 게 여자 때문이라는 게 이상할 수 있지만, 아니 그래도 되지 않을까.”

우리는 한참을 침묵했다.

그리고 누군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그 카페 앞을 지나면 속도를 줄여.”


강아지들은 이제 주인 품에 안겨 잠들어 있었고, 우리는 여전히 이야기를 이어갔다.

답은 없었다.

다만, 우리는 조금 더 명확해졌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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