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팅 후기: 문정동 양식집에서의 저녁, 그리고 독서 같은 만남

어느 파트너사 부사장님의 소개로 만난 동갑 이성. 친절했지만, 설렘이 없었던 소개팅.

소개팅 후기: 문정동 양식집에서의 저녁, 그리고 독서 같은 만남

소개 경로

어느 발표장에서 우연히 → 파트너사 부사장님 → 동갑 이성.

동갑이라고 해서 망설였다. 그런데 나는 이미 “누구든 만나본다”고 선언한 뒤였다. 망설임은 짧았다.

문정동 양식집

양식집에 들어섰다. 상대는 당연하다는 듯 벽쪽 자리에 앉았고, 나는 통로를 등지고 앉았다. 양식집에서 마주 앉는 사람들은 늘 이런 배치가 된다. 누가 정한 것도 아닌데.

메뉴를 고르는 시간이 은근히 길었다. 파스타와 스테이크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둘 다 파스타를 골랐다. 메뉴 선택이 비슷하면 왠지 통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드는 법인데, 이번엔 그런 느낌이 없었다. 그냥 둘 다 파스타가 먹고 싶었을 뿐이다.

오른쪽에 40~50대 여성 두 명이 앉아 있었다. 우리를 한 번 흘끗 봤다. 소개팅이라는 걸 눈치챈 모양이다. 왼쪽에는 4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 둘. AI, 자동화 툴, 주식, 삼성전자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 소리가 들린다는 건, 내가 지금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대화는 무난했다. 직장 이야기, 취미, 여행. 질문하면 답하고, 답하면 질문하고. 리듬은 맞았다. 그런데 리듬이 맞는 것과 심장이 뛰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양식집 저녁 식사

상대는 약속을 미룬 게 미안하다며 자연스럽게 계산했다. 쿨했다. 그 한 마디와 그 행동이, 이 사람의 결을 말해주었다.

배가 불러서 디저트는 패스했다. 근처 카페로 가기로 했다.

카페 찾기

검색해보니 괜찮아 보이는 곳이 두 군데 나왔다. 하나는 인테리어가 예쁜데 안에 강아지가 돌아다니고 있었고, 어딘가 파티 분위기가 났다. 패스. 조금 더 걸었다. 다른 한 곳. 이미 문을 닫았다.

9시면 다 닫는 동네구나.

검은색 인테리어의 카페에 도착했다. 8시 46분. “저희 9시까지인데 괜찮으세요?” 다음에 오겠다고 했다.

밤거리 카페 찾기

내심 차 세워둔 곳 근처로 가고 싶었다. 어차피 근처에 산다고 했으니, 나중에 데려다드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결국 찾은 카페. 통창 가운데 옛날 문이 그대로 달려 있었다. 그것만 안 바꿨나. 안으로 들어가니 두쫀쿠가 14개쯤 남아 있었다. 시킬까 하다가 오늘 칼로리를 이미 초과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만 시켰다.

자꾸 시선이 딴 데로 갔다. 문가 쪽에 앉은 여성 네 명, 다른 쪽에 여성 둘. 집중이 안 되는 건 이유가 있다. 관심이 없는 거다.

이런 순간이 소개팅에서 가장 잔인하다. 상대가 나쁜 사람이 아닌데, 끌림이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순간. 잘못한 게 아무것도 없는데 마음이 안 가는 것. 그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카페에서의 조용한 대화

소개팅과 독서

이성적 끌림은 처음 몇 분 안에 알 수 있다. 겉도는 대화가 이어지다가, 나는 이런 말을 꺼냈다.

“소개팅은 독서랑 비슷한 것 같아요. 별로인 소개팅 가면 책 읽는다고 생각하면 돼요.”

잘 맞는 사람을 만나려면 여러 사람을 만나야 한다. 그래서 주변에 적극적으로 소개를 부탁한다. 소개해주는 분들에게는 꼭 감사를 표한다. 만남의 결과와 상관없이.

마무리

집에 돌아와서 감사 인사를 보냈다. 주말에 아는 언니랑 집에서 논다기에 기프티콘을 하나 보냈다. 별 뜻은 없었다. 그냥 좋은 시간 보내라는 마음이었다.

다음 날, 주선자 부사장님께도 연락했다.

“안녕하세요 부사장님! 소개해주신 분 어제 잘 만나고 왔습니다! 이야기는 재밌게 나눴는데 이성적 끌림이 좀 적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좋은 분 소개시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끌림이 없어도 예의는 지킨다. 주선자에게는 감사를 표한다. 그리고 다음 만남을 기다린다.

소개팅을 많이 하다 보면 패턴이 보인다. 첫 5분 안에 느낌이 온다. 목소리 톤, 눈을 마주치는 빈도, 웃을 때 눈가의 주름. 그런 사소한 것들이 끌림을 만든다. 조건표로는 절대 알 수 없는 것들.

반대로, 스펙이 아무리 좋아도 느낌이 안 오면 안 온다. 나이, 직업, 학교. 그런 건 종이 위에서만 의미가 있다. 실제로 마주 앉으면 전혀 다른 언어가 작동한다.

좋은 사람을 만나는 일은, 여러 권의 책을 읽는 것과 비슷하다. 대부분은 기억에서 흐려지지만, 가끔 한 문장이 오래 남는 책을 만난다.

아직 그 한 문장을 찾지 못했다.


이 글은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WonderX의 개인 블로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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